우리가 막 트잍터에모여즐거워하던 때가 생각나는군요 2010-11쯤
카톡ui에서 자유의단내를 느끼던 그시절말이 죠
Posts by 재터
커스텀핸들 설정했더니 아주 멋있다
왜그러니 종이새야
우리가 막 트잍터에모여즐거워하던 때가 생각나는군요 2010-11쯤
카톡ui에서 자유의단내를 느끼던 그시절말이 죠
황량한 온라인 벌판에 회전초가 굴러갑니다
~라미엘 2탄~(메인트백업)
내가 느끼는 내 몰락: 개숭고함
vs
현실:
아침 산책
지극히 통제되는 무력한 해방감 같은 거(화로 앞 연주자의 얼굴은 불길로 인해 밝아졌다 어두워졌다 한다)
확실히 혼자 있을 때보다 식사를 잘 챙겨먹는다.
비계만 되면 참 좋겠는데..
Fragments.. experiences both perfectly individual and perfectly universal
익숙해진다는 게 아프지 않다는 뜻은 아니지. 익숙해진다는 게 좋아진다는 뜻은 아니지. 익숙해진다는 게 길들여진다는 뜻은 아니지. 익숙해지는 것에는 익숙해지는 것만의 친절함이 있다. 웃으면서 후려쳐도 납득이 되는 거. 막으려 손을 들어올렸다가 멈추고 다시 주저앉는다. 익숙해진다는 건 무언가를 안다는 뜻은 된다.
A close up of tree in Virginia with bark missing and curving tracks, a sign of pests attacking the tree. Pale green lichen and moss cling to the remaining bark.
An interesting tree in Virginia.
“고요의 불길
무엇보다 진실한, 관찰하는 자유의 불길”
옥 목걸이를 선물받았다. 옥은 착용자를 지켜준다고 한다.
5시에 달렸다. 씻고 책상에 앉아 세 장의 편지를 썼다.
웅장한 교향곡이 들려왔다 채보하려 하다가 꿈임을 깨닫고 겨우 한 눈만 떠서 휴대폰 녹음 버튼을 누른 뒤 들리는 대로 흥얼거렸다 안심하고 계속 쏟아지는 색채와 음률을 즐겼다 실제로 깨어나니 어디에도 기록이 없었다
나는 빠짐없이 보고하며 보고서는 지혜로우며 틀림없다
불취불귀
(어떤 음악도 듣고 있지 않음)
남해의 제왕(帝)은 ‘숙’이고 북해의 제왕은 ‘홀’이고 중앙의 제왕은 ‘혼돈’이다. ‘숙’과 ‘홀’이 때때로 ‘혼돈’의 땅에서 함께 만났는데, ‘혼돈’이 그들을 매우 잘 대접하였다. ‘숙’과 ‘홀’이 혼돈의 은덕에 보답하려고 함께 상의하여 이렇게 말했다. “사람들은 모두 일곱 개의 구멍이 있어 보고 듣고 먹고 숨 쉬는데, 이 혼돈만은 있지 않으니, 시험 삼아 구멍을 뚫어줍시다.” 하고는 하루에 한 구멍씩 뚫었더니 칠일만에 혼돈이 죽어버렸다. <장자 내편 중>
언 호수 위에 유리조각들을 던지는. 조각이 모여 병의 모양을 이루리라 믿는. 호수가 녹으면 병이 움직여 떠가리라 믿는. 어느 뜨거운 날 챙 모자를 쓰고 물가에 놀러온 주인이 계실 것을 믿는. 주인은 오직 이 날을 위해 나에 의해 빚어져 작은 집에서 오래도록 살고 있었음을 믿는. 그분의 손에 내 병이 당도하기를 믿는. 그리하여 병을 목도한 주인의 눈이 타고 귀가 멀 거라 믿는. 모자를 잃어버리고 집에 돌아간 주인이 긴 탁자에 앉아서 유리를 만들기 시작할 것을 믿는.
(메자닌)
서로 부인하는 사랑은 서로 억류한다이때 둘 사이의 흑점은 윤리이다
회사안감
죽은 잎사귀들도 함께
"난-너를-좋아해"같은 작은 속삭임들, 한들거리고, 셀 수 없고, 길을 따라 만발한. 내가 가장 좋아하는 작은 하늘색 꽃처럼
do i amuse you when the night is slow
신변잡기를 늘어놓을 수 있다는 건 대개 이완의 증거이다. 내면의 무언가에 사로잡혀 있지 않다. 어떤 한 부분을 중심으로 움츠러들어 뭉쳐 있지 않다. 그 사실이 주는 안도감은 사소하지 않다.
하고 싶은 말을 하기 위해 자기모순을 무릅쓴다는 얘기도 이제 이해한다. 한 인격은 무수히 많은 층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각 층마다 서로 다른 방향의 인력이 작용하고 있다는 것을 볼 수 있으므로. 단순한 감정조차 단일한 구성을 가질 수 없는 것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