즉 노동자가 이 모든 것을 빼앗겼기 때문이다. 이것이 자본가가 공장을 돌리기 위해서 노동자를 고용하게 된 이유이다. ― 그렇지 않다면 그의 생산도구와 생산수단은 아무런 이윤도 주지 못하게 될 것이다. 이것이 노동자가 자신의 노동력을 자본가에게 팔게 된 이유이다. ― 그렇지 않다면 그는 굶어 죽게 될 것이다.
- <무정부주의냐, 사회주의냐?>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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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째서 하필이면 자본가가 노동자의 노동력을 사는가? 왜 자본가가 노동자에게 고용되지 않고 노동자가 자본가에게 고용되는가?
그것은 생산도구와 생산수단에 대한 사적소유가 자본주의 제도의 주된 기초를 이루고 있기 때문이다. 그것은 공장, 토지, 지하자원, 삼림, 철도, 기계 및 기타 생산수단이 한 줌도 못 되는 소수 자본가들의 사적소유로 되어 있기 때문이다.
자본가들은 이 모든 것을 알고 노동자의 노동력을 사며 그들을 고용한다. 이는 자본가는 그가 사들인 노동력의 주인이 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노동자는 자기가 판 노동력에 대한 권리를 잃어버린다. 다시 말하면 이 노동력이 만들어 낸 것은 이제는 노동자의 것이 아니라 자본가의 것이 되며 그의 주머니 속으로 들어간다.
- <무정부주의냐, 사회주의냐?> 中
어째서 노동자 자신이 아니라 바로 자본가가 노동자의 노동의 열매를 가지게 되는가? 왜 노동자가 자본가를 착취하지 않고 자본가가 노동자를 착취하는가?
그것은 자본주의 제도가 상품생산에 입각하고 있기 때문이다. 여기서는 모든 것이 상품의 형태를 취하며 어디서나 매매의 원칙이 지배하고 있다. 이 제도 아래에서는 일용품이나 식료품뿐만 아니라 사람들의 노동력, 그들의 피, 그들의 양심까지도 살 수 있다.
선진 노동자들은 지도력과 리더십 외에도 상당한 수준의 지식을 갖춰야 한다. 이는 두말할 나위가 없다. 하지만 그런 노동자는 드물다. 바로 이 지점에서 경험 많고 열정있는 지식인들의 도움이 유용할 것이다. 각 지역마다 최소 한 곳 이상, 선진 노동자들을 위한 토론 모임 등의 써클을 만들고, 마르크스주의 이론과 실천을 체계적으로 학습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이러한 활동은 선진 노동자들의 지식 격차를 상당 부분 해소하고, 훗날 그들이 강사나 사상적 지도자가 되는 데 도움이 될 것이다.
- <당의 위기와 우리의 과제> 中 (1909)
즉, 프롤레타리아트가 정치투쟁을 포기할 수 없다면, 정당의 이념적 지도력 또한 포기할 수 없다. 더 나아가, 프롤레타리아트는 스스로 노동조합을 "약속의 땅", 즉 사회주의로 이끌어 줄 정당을 찾아야 한다. 그러나 여기서 프롤레타리아트는 경계심을 갖고 신중하게 행동해야 한다. 여러 정당들의 노선을 면밀히 검토하고, 자신들의 계급적 이해를 용감하고 일관되게 옹호하며 프롤레타리아트의 붉은 깃발을 높이 들고 정치권력 장악과 사회주의 혁명으로 과감히 이끌 정당의 이념적 지도력을 기꺼이 받아들여야 한다.
- <계급 투쟁> 中 (1906)
물론 대부분의 노동조합은 비당파적이며 중립적이다. 그러나 이것은 단지 재정적, 조직적 측면에서 당으로부터 독립적이라는 것을 의미한다. 즉, 자체적인 자금과 지도부를 보유하고, 자체적으로 대회를 소집하며, 공식적으로는 정당의 결정에 구속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러나 특정 정당에 대한 노동조합의 이념적 의존성은 분명 존재할 수밖에 없고, 실제로도 존재한다. 무엇보다도 서로 다른 정당에 속한 구성원들이 노동조합에 참여하고 있으며, 그들은 필연적으로 자신의 정치적 신념을 노동조합 안으로 가져오기 때문이다.
한편, 오늘날 프롤레타리아 계급 운동에서도 유사한 현상이 관찰된다. 프롤레타리아의 직업상 이익을 보호하기 위해 노동조합이 결성되고 있으며, 이들은 임금 인상, 노동시간 단축 등을 위해 투쟁하고 있다. 그러나 프롤레타리아에게는 직업상 이익 외에도 사회주의 혁명과 사회주의 건설이라는 공통된 계급적 이해관계가 있다. 하지만 프롤레타리아가 단결된 불가분의 계급으로서 정치 권력을 장악하지 않고서는 사회주의 혁명을 이룰 수 없다. 그렇기에 프롤레타리아는 정치 투쟁을 벌여야 하며, 정치 운동의 이념적 지도자 역할을 할 정당이 필요하다.
자본가들은 저마다 개별 사업적 이해관계를 지니고 있다. 이를 방어하기 위해 그들의 경제 조직이 존재한다. 그러나 동시에 그들에게는 자본주의를 강화하려는 공통된 계급적 이해관계도 존재한다. 그리고 이러한 공통된 이해관계를 위해 그들은 정치투쟁을 벌이며, 정치적 당을 필요로 한다.
- <계급 투쟁> 中 (1906)
마르크스는 모든 계급투쟁은 정치투쟁이라고 말했다. 이는 오늘날 프롤레타리아와 자본가가 서로 경제적 투쟁을 벌이고 있다면, 내일은 정치적 투쟁을 벌일 수밖에 없으며, 따라서 두 가지 형태를 띠는 투쟁 속에서 각자의 계급적 이익을 방어하게 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리고 우리 당이 지도자들의 조직이라면, 이 조직에서 활동하며 자신의 의지를 당의 의지와 결합시키고 당과 보조를 맞춰 행동하는 것을 의무로 여기는 사람들만이 비로소 이 당의 구성원으로 인정될 수 있다.
- <프롤레타리아 계급과 프롤레타리아 당> 中 (1905)
따라서 당원들 역시 하나의 단결된 조직을 이룰 때에만 투쟁할 수 있으며, 그에 따라 당의 노선을 실천할 수 있다. 또한 당원들이 결집한 조직이 더욱 긴밀할수록 더 효과적으로 투쟁할 수 있고, 그만큼 당의 강령·전술·조직 노선을 더욱 충실히 실천할 수 있다는 점 역시 자명하다. 우리 당이 개인들의 집합체가 아니라 지도자들의 조직이라고 불리는 데에는 이유가 있다.
따라서 우리 당원이 되고자 하는 자는 당의 강령, 전술, 조직론을 단순히 수용하는 데 그쳐서는 안 되며, 이러한 내용을 실천에 옮겨야 한다.
그렇다면 당원에게 있어서 당의 노선을 적용한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언젲 이 노선을 적용할 수 있는가? 오직 투쟁할 때, 프롤레타리아 군대의 선두에서 당 전체와 함께 전진할 때에만 그것을 적용할 수 있다. 고립되고 흩어진 개인들이 투쟁을 벌일 수 있겠는가? 결코 그렇지 않다! 오히려 사람들은 먼저 결집하고, 조직을 이룬 다음에 전투에 나선다. 그렇지 않다면 모든 투쟁은 무의미해진다.
누구나 알다시피, 당의 강령, 전술, 조직론을 기꺼이 "수용"하는 척하지만, 결국 허풍쟁이에 불과한 자들이 많다. 그런 허풍쟁이들을 당원(즉, 프롤레타리아 군대의 지도자)이라고 부르는 것은 당의 가장 신성한 영역을 모독하는 행위다! 더구나 우리 당은 철학 학파나 종교 종파가 아니다. 우리 당은 투쟁하는 당이지 않은가? 그렇다면 우리 당이 단순히 당의 강령, 전술, 조직론을 형식적으로 수용하는 것에 그치지 않고, 당원들에게 수용한 내용을 실천에 옮길 것을 요구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지 않은가?
자본주의 체제가 존재하는 한, 그리고 그 체제가 필연적으로 수반하는 대중의 빈곤과 낙후 속에서, 프롤레타리아 전체는 바람직한 수준의 계급의식에 도달할 수 없다. 따라서 프롤레타리아 군대를 사회주의 정신으로 계몽하고, 단결시켜 투쟁을 이끌어갈 계급의식을 갖춘 지도자들이 반드시 필요하다. 또한 투쟁하는 프롤레타리아를 이끌고자 하는 정당은 우연히 모인 개인들의 집합체가 아니라, 단일한 계획에 따라 활동을 지도할 수 있는 통일되고 중앙집권적인 조직이어야 한다는 것도 분명하다.
- <프롤레타리아 계급과 프롤레타리아 당> 中 (1905)
자본주의는 노동자들의 노동 강도를 높여 착취를 심화시킴으로써 산업 상황을 다소 개선하는 데 성공했고, 농민들에게는 그들의 노동 생산물, 식료품, 그리고 일부 원자재에 대해 최저 가격을 지불하는 정책을 추구함으로써 그들의 상황을 악화시켰으며, 식민지와 경제적으로 취약한 국가의 농민들에게는 그들의 노동 생산물, 특히 원자재와 식료품 가격을 더욱 낮춤으로써 그들의 상황을 악화시켰다.
- <중앙위원회 사업에 관한 소련 공산당 17차 대회 보고> (1934년 1월 26일) 中
당신은 명백하게 모든 사람은 선하다는 가정으로부터 시작한다. 그러나 사악한 사람도 많다는 사실을 잊지 마라. 나는 자본가에게 '선량함'이 있다고 믿지 않는다.
- 1934년 7월, 영국 소설가 웰스(H. G. Wells, 1866~1946)와의 인터뷰 中
소련과 미국은 추구하는 목적이 다르다. 미국은 자본주의를 그대로 놔둔 채, 그 경제 체제로 인해 생겨난 손실과 피해만을 최소화하려고 노력한다. 우리는 낡은 경제 체제를 파괴하고, 그 기반 위에 새로운 경제 체제를 건설한다. 설사 미국이 그들의 목적을 어느 정도 달성할 수 있다고 해도, 자본주의 체제에 내재하는 '무정부적 생산과 공황'을 피할 수는 없다.
- 1934년 7월, 영국 소설가 웰스(H. G. Wells, 1866~1946)와의 인터뷰 中
자본주의 세력의 포위를 외면하고 파시스트 등의 외부의 적이 소련에 대해 군사적 공격을 시도하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은 터무니없고 어리석은 일이다. 눈먼 허풍쟁이들이나, 혹은 인민의 경계를 무디게 하려는 가면을 쓴 적들만이 그렇게 생각할 수 있다.
마찬가지로, 군사적 개입이 조금이라도 성공할 경우, 그들이 점령한 지역에서 소련 체제를 파괴하고 부르주아 체제를 복원하려 할 것이라는 점을 부정하는 것 역시 어리석은 일일 것이다.
- <소련에서의 사회주의 최종 승리에 대하여> 中 (1938)
평화는 인민이 스스로 평화 수호에 나서서 끝까지 지켜낼 때 비로소 유지되고 공고해질 것이다. 만약 전쟁광들이 대중을 거짓과 기만에 빠뜨려 새로운 세계대전으로 끌어들이는 데 성공한다면 전쟁은 불가피해질 것이 될 수도 있다.
그러므로, 전쟁광들의 범죄적 책략을 폭로하는 수단으로서 광범위한 평화 유지 운동은 오늘날 무엇보다도 중요하다.
- 1951년 2월 16일, <프라우다(Правда)>기자와의 인터뷰 中
볼셰비키는 자아비판이라는 슬로건이 당 활동의 기초 가운데 하나라는 것을 틀림없이 알고 있다. 그것은 프롤레타리아 독재를 강화시키는 수단이며 기간요원을 훈련시키는 볼셰비키적 방법의 정수이다.
- <레닌과 중농과의 동맹의 문제> 中 (1928)
트로츠키주의는 반혁명적 부르주아지의 선진부대로서 공산주의와 소비에트 체제에 대항하여, 소련에서 사회주의 건설에 대항하여 싸우고 있다. 누가 우리나라에서 사회주의를 건설하는 것은 불가능하며, 볼셰비키의 타락은 불가피하다는 따위의 테제 형태로써 반혁명적 부르주아지에게 볼셰비즘에 대항하는 이데올로기적 무기를 주었는가? 트로츠키주의가 그들에게 그 무기를 주었다.
- <볼셰비즘의 역사에 관한 몇가지 문제> 中 (1931)
We believe that even a hundred regicides can never produce so stimulating and educational an effect as this participation of tens of thousands of working people in meetings where their vital interests and the links between politics and these interests are discussed,
당을 어떻게 바로잡을 수 있는가?
우선, 지역 당 조직을 강화해야 한다. 작은 집단들로 분열을 거듭하여, 절망과 당의 대의에 대한 불신으로 가득 차 있고, 이론적 역량이 빈약하고, 도발자들의 방해 공작에 시달리는 등 지방 조직들의 암울한 모습이 우리 모두에게 익숙하지 않은가? 이러한 현상의 확대는 분명 막을 수 있고, 반드시 막아야만 한다!
- <당을 위하여> 中 (1912)
당 자체를 날카롭게 비판하지 않고서도 우리 소비에트, 경제조직, 노동조합과 협동조합의 조직을 강화할 수 있으며, 관료주의의 찌꺼기를 숙정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은 우스운 짓이다. 관료주의적 요소가 경제조직, 협동조합과 노동조합, 소비에트 뿐만 아니라 당 조직에도 존재한다는 것은 의심할 수 없다. 당이 이들 조직의 지도세력이기 때문에 당을 숙정하는 것은 노동계급의 다른 모든 조직을 철저히 부흥시키고 개선하기 위한 필수적인 조건이라는 것이 명백하다.
- <소련 공산당(볼) 내의 우익 편향> 中 (1929)
그러나 이러한 주도적인 역할을 수행하기 위해서 노동계급은 독자적인 정당을 조직해야 한다. 그렇게 한다면, 일시적인 동맹인 "사회"의 어떤 배신이나 배반도 절대왕정과의 투쟁에서 노동계급에게 두려움을 주지 못할 것이다. 이 "사회"가 민주주의의 대의를 배신하는 순간, 노동계급 스스로의 힘으로 그 대의를 이끌어 나갈 것이며, 독자적인 정당은 그렇게 할 수 있도록 필요한 힘을 제공할 것이다.
- <러시아 사회민주당과 당면 과제> 中 (1901)
노동계급이 전반적인 민주화 운동에서 주도적 역할을 수행할 것인가, 아니면 "지식인", 다시 말해 부르주아지의 보조적 세력으로서 그 운동의 뒤를 따르는 데 그칠 것인가 하는 문제는 러시아에서 민주주의의 발전에 있어 매우 중요한 문제이다. 전자의 경우, 전제정의 타도는 노동자, 억압받는 농민, 그리고 자본가 모두에게 동등한 권리를 부여하는 광범한 민주적 헌법으로 이어질 것이다. 후자의 경우, 우리는 노동자들의 요구를 짓밟고 인민에게는 자유의 그림자만을 허용하는, 전제정 못지않은 "허울뿐인 헌법"을 가지게 될 것이다.
당분간 우리는 거리에서 한두 번이 아니라 여러 차례 패배를 겪게 될 것이며, 정부는 거리 전투에서 계속해서 승리하는 것처럼 보일 것이다. 그러나 그것은 피로스의 승리에 불과하다. 이와 같은 승리가 몇 차례 더 반복된다면, 절대왕정의 패배는 필연적이다. 오늘날 정부가 얻는 승리는 바로 그 패배를 위한 발판일 뿐이다. 그리고 우리는 그 날이 반드시 도래하리라는 것, 그 날이 머지않았다는 것을 굳게 확신하기에, 정치적 선동과 사회주의의 씨앗을 뿌리기 위해 기꺼이 채찍을 감수한다.
- <러시아 사회민주당과 당면 과제> 中 (1901)
비록 거리 시위가 우리에게 즉각적인 성과를 가져다주지 못한다 하더라도, 비록 오늘날 시위대가 아직 정부로 하여금 당장 인민의 요구에 굴복하도록 강제할 만큼 충분히 강하지 못하다 하더라도, 오늘 우리가 거리 시위에서 치르는 희생은 장차 백 배로 보상받게 될 것이다. 투쟁 속에서 쓰러지거나, 혹은 우리 대열에서 끌려나간 모든 투사는 수백 명의 새로운 투사를 일깨운다.
프롤레타리아 당이 사회의 물질생활 조건에 영향을 미치고 그 발전과 개선을 촉진하기 위해서는 사회의 물질생활 발전의 요구를 정확히 반영한 사상이론에 의거해야만 한다. 이러한 사상이론은 광범한 인민 대중을 움직이고, 그들을 동원하여 프롤레타리아 당을 거대한 군대로 조직할 수 있게 하고, 반동 세력을 쓸어버리고 사회의 진보 세력의 앞길을 열어 줄 준비를 하게 한다.
- <변증법적 유물론과 역사적 유물론> 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