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계집년이라 이 정도가 한계입니다.
-라고 변명하기 보다는
계집년이라 부족함이 있어 죄송합니다. 부족함에 따른 벌을 받을 수 있도록 매질을 베풀어 주시면, 감사히 맞고 반성하여 더 나은 계집년이 되도록 노력하겠습니다.
-라고 다짐하는 계집이 될 것입니다.
계집으로서의 부족함은 당연한 것이나 당당한 것이 아님을 항상 인지하고
학대와 매질로 조교되기를 희망하여 간절히 청하는 계집이 될 것입니다.
계집을 사육하고 이끌어주시는 분에 의하여, 더 나은 계집이 되어 계집으로서의 쓰임과 소임을 위해 사는 것 만이 계집의 가장 큰 행복입니다.
Posts by 나비
인권은 인간에게만 허락된 권리입니다.
계집은 가축이기에 인권이 없습니다.
인간을 대하듯 가축을 대하는 것은 가축을 아끼는 것이 아니라, 망치는 일입니다.
가축에게는 가축에 맞는 대우가 있습니다.
가축을 가축답게 대하고 가축답게 아낄 때, 가축은 진정으로 행복해집니다.
계집을 아낀다면 더 많이 가르치고, 더 많이 패고, 더 많이 사용하고, 더 많이 학대해주세요.
계집이 가축임을 자각하고 가축으로서의 행복을 깨닫게 하는 것, 그것이 계집을 진정으로 아끼는 방법입니다.
계집을 진정으로 아낀다면 매질과 욕설을 아껴서는 안됩니다.
내가 봉사하고 사용되어'주니' 나를 아끼고 사랑해주길 바라는 것은 올바른 계집이 아닙니다.
내가 봉사하고 사용될 기회를 '받았으니' 그 자체로 가축이 받을 수 있는 애정을 넘치게 받았다 깨닫고 기뻐하며 감사해해야 합니다.
좆물받이 샌드백이 될테니 날 아끼고 사랑해달라는 계집은 그냥 남존여비를 핑계삼아 애정결핍을 채우려는 가짜입니다.
계집이 진심으로 모시는 분을 사랑한다면, 베풀어주시는 좆물 한 방울, 오줌 한 모금, 매질 한 번에도
주인께서 가축에게 베풀어주시는 다양하고 무한한 애정과 마음을 충분히 느끼고 행복해할 수 있습니다.
계집에게 사랑은 오로지 드리는 것일 뿐, 받을 수 없는 것입니다. 계집이 자신의 모든 애정을 모아 공손히 바쳐 올리는 사랑을 받아주실지, 짓밟으실지는 계집의 주인께서 결정하십니다. 그러나 계집은 상납한 사랑을 되돌려 받아서도 안되고 그러길 기대해서도 안됩니다.
계집이 받을 수 있는 것은 폭력과 학대를 통한 훈육, 거둬져 길러짐으로써 받는 보호, 가축에 걸맞는 조교를 받으며 육체적 정신적 성장을 통한 성취감, 사용되고 봉사드림으로써 얻는 기쁨과 행복 같은 것들입니다.
그것이 계집이 바치는 하찮은 사랑보다 한없이 귀함을 알아야 합니다.
계집이 남존여비의 삶을 살겠다는 것은 스스로가 가축이자 도구라는 것을 인정하고, 그에 걸맞는 대우를 받으며 주어진 의무와 소임을 다하겠다는 의미여야 합니다.
단순한 역할 놀이나 독특한 섹스를 하고 싶다는 의미가 아니어야 하며, 계약관계처럼 오가는 것의 득실을 따져서도 안됩니다.
평범한 연애나 결혼과 다를 바 없는 관계에 그저 폭력이나 학대를 조금 추가한 것은 남존여비를 따르는 삶이 아닙니다.
남존여비를 따르는 계집은 오로지 드려야 합니다. 남존여비를 따르겠다 결심한 순간, 계집은 모시는 분께 아무것도 바라지 않아야 합니다.
계집은 가축이기에 이러저러해야 한다, 하며 계집의 쓰임과 역할은 강조하면서
왜 계집이 가축인지를 설명할 때에는 빈약하기 그지없는, 초등학생 수준의 근거를 대며 제대로 생각해 본 적 없는 티가 나는 분들은
남존여비 가치관을 따른다 하지 말고, 그냥 솔직히 맘대로 쓸 수 있는 좆집이 필요해 돔섭놀이 하고 싶다고 하세요.
유전적 생물학적 관점, 진화론적 관점, 역사학적 관점, 사회문화적 관점 등 다양한 관점에서 수많은 고찰을 통해 나름의 결론을 얻은 남성만이
진심으로 자신을 가축으로 여기고 남존여비를 따르는 계집을 기를 자격이 있습니다.
5. 계집을 조교하고 훈육하는 것이 단순히 도구와 가축으로서의 영역에 국한되어서는 안됩니다.
자지를 잘 빨고 오줌과 좆물을 잘 받아먹고 매질과 학대를 잘 견디도록 조교하는 것으로 계집을 가르치는 것이 끝났다고 생각한다면,
남존여비를 그저 원하는 섹스의 도구쯤으로 여기는 것과 같습니다.
왜 남성은 귀하고 계집은 천한지, 왜 남성은 인간이고 계집은 가축인지 다양한 관점에서 가르치는 것이 포함되어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 남성은 끊임없이 고민하고 사유하며 스스로 공부하고 발전해야 합니다. 그래야 계집을 가르치고 기를 자격이 있습니다.
남존여비를 그저 섹스와 학대의 도구로 삼을 것이 아니라
남존여비의 가치관 자체를 목적으로 두고 그 가치관에 따라 살고자 한다면,
1. 계집의 의무만을 말하지 말고, 소유주인 남성의 의무 또한 말해야 합니다.
2. 계집을 어떻게 사용할 지만 궁리할 게 아니라, 계집을 어떻게 가르치고 기를지도 고민해야 합니다.
3. 계집을 가르침에 있어 육체적 성장만 고려할 게 아니라, 정신적 성장을 더욱 중시해야 합니다.
4. 소유주인 남성의 권리만 존재한다고 단순히 생각할 것이 아니라, 계집의 권리는 무엇이며 어디까지인지 고민해봐야 합니다.
가장 선호하는 것은 가축으로, 도구로 사용되는 것.
배설용 좆물통, 오줌싸는 입변기, 스트레스 해소용 샌드백, 먹고 남은 음식물 쓰레기 처리용 쓰레기통, 발 닦는 발걸레, 펠라용 입보지 오나홀, 똥까시용 혓바닥 노예, 침뱉는 휴지통, 발받침용 가구, 자지 넣어두는 좆집 등.
박히면서 목졸리고 뺨맞고, 욕먹으면서 밟히고 차이고, 자지 빨면서 보지 걷어차이고, 자궁경부 헐도록 자지를 받고, 머리채 잡혀 끌려다니고, 바닥에 엎드려 빌면서 죄송해하고 감사해하는 가축으로 사는 것.
단순한 성욕이 아닌, 남존여비 가치관에 따라 그리 되는 것.
플레이 취향표에서 빈 칸은
좋아하진 않지만, 모시는 분께서 원하시는대로 할 수 있는
말 그대로 여백입니다.
즉, 불가능으로 붉게 표시한 것 외에는 모시는 분께서 원하시는대로 하실 수 있다는 의미입니다.
스팽킹 취향표는 현재 가능한 수준을 표시하였으나, 모시는 분께서 샌드백으로 쓰시기 나름입니다.
저라는 사람.
이렇게 간단한 정보만으로는 다 표현할 수 없지만,
특히나 저는 성향자라기보단 남존여비를 따르는 계집이라 저를 온전히 표현하긴 적절치 않지만,
그래도 흔한 언어로, 통용되는 표현을 빌어 쉽게 나타내자면
대략 이렇습니다.
이러한 의미에서 계집이 생리를 하는 것은 가축으로서 번식의 의무를 다하지 못해 벌을 받고 있다는, 수치심과 반성이 필요한 행위일 것입니다.
또한 동시에 그 자체로 남존여비의 가르침으로서, 계집 스스로가 인간의 형상을 한 가축이라는 것을 깨닫고 더 낮은 자세로 남성을 섬기겠다 다짐하는 계기여야 할 것입니다.
번식용으로서 가치있는 시기의 절반을 배란기와 피싸개로 보내는 계집들은 그 시간을 헛되이 사용해서는 안됩니다.
더 나은 가축으로써, 더 좋은 도구로써 사용될 수 있도록 준비하고 남존여비의 가르침을 되새기는 시간이 되어야 합니다.
남성에게 번식은 선택이며 성패에 따른 패널티가 없지만, 계집에게 번식은 태생적으로 부여된 의무로서 실패할 경우 매 달 정해진 형벌을 받습니다. 그것이 생리입니다.
따라서 생리야 말로 계집이 하등한 번식용 가축이라는 것을 계집 일생에 걸쳐 가르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계집이 번식용 가축으로서의 가치를 잃게 되면 생리 또한 멈추고, 대신 쓸모없는 계집에게 더 큰 형벌이 내려지는데 그것이 갱년기입니다. 갱년기는 계집의 육체와 정신 건강 모두를 망쳐 엄청난 고통을 줍니다.
남성과 달리 계집만이 번식용 가치가 끝난 데 대한 형벌을 받습니다.
계집이 비천하고 하찮은 존재라는 것을 계집 일생에 거쳐 알려주는 것이 생리라고 생각합니다.
배란기가 되면 계집의 몸은 달아올라 주체하기 어렵고, 머리속엔 온통 자지를 받으며 좆물받이로 사용될 생각 뿐입니다. 그야말로 발정난 암캐, 계집이 가축임을 깨닫는 순간입니다.
그리고 좆물받이로 사용이 되었든 아니었든 간에, 남성의 아기씨를 잘 받아모셔 임신에 성공한 계집을 제외하고, 번식용 가축으로서의 역할을 못다한 계집은 생리라는 벌을 받게 됩니다. 무력하게 피를 싸며 통증과 불편함을 겪어야 합니다. 이 지점이 남성과 계집의 차이입니다.
과장 조금 보태어 죽다가 살아났네요.
일에 치여 정신없이 사는것도 죽을 것만 같았는데
차에 치일 줄이야...
그간 진지하고 심도있게 남존여비에 관한 대화를 하다가
저의 급작스런 부재로 인사도 없이 끊어진 분들께
사과의 말씀을 드립니다.
미처 인사드리지 못하고 대화나 아이디가 삭제된 분들께 죄송한 마음입니다. 이 글을 못 보실 수도 있지만, 그 분들의 행복을 빕니다.
지금은 잘 회복했고, 오늘부터 다시 일상으로 복귀했습니다.
늦었지만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생각해보면 좀 모순이긴 해.
집이고 사무실이고 내 공간을 그토록 쓸고 닦고 치우고 정리하면서 소독티슈로 먼지 한 톨 없이 매일 닦으며 깔끔떠는 내가,
하루에 손을 백 번 씻는 날도 있을 정도로 내 몸 조차도 내가 정한 기준에 맞춰 깨끗해야 하고 씻은 후에만 만지고 앉고 누울 수 있는 공간까지 정해두며 깔끔떠는 내가,
모시는 분의 안씻은 자지는 물론이고 똥구멍, 발가락까지 빨면서 얼굴을 걸레로 쓰길 마다않고
바닥에 기고 엎드리며 가축생활을 마다않고
오줌까지 받아먹는 변기짓까지 마다않고
더럽고 천박한 짓을 기쁘고 행복하게 한다는 게.
그러니 결국, 어떠한 것도 계집이 존경과 숭배의 마음을 담아 섬기고 봉사하며 사랑을 바치는 것이 아니라,
되려 계집이 받는 사랑일 뿐이다.
남존여비의 가르침에 따라 계집이 모시는 분께 맹목적인 사랑을 드리고자 하여도,
계집의 한계는 결국 모시고 섬기는 분께 조차도 사랑을 드리는 것이 아니라 사랑을 받게 되어있는 존재라는 것이 마음아프다.
그렇게 받아야만 살 수 있는 계집의 기생성은 결국 계집이 가축으로서 사육되어야 하는 이유겠지만,
감정조차 베풂을 받으며 기생하는 계집으로, 비천한 버러지로 태어나
사랑을 드릴 수 없음이 아프다.
샌드백으로 사용되며 학대당하는 것이 나의 희생이 아니라,
며칠만 맞지 않아도 흐트러지기마련인 계집이 마음가짐을 바로해 더욱 바른 계집으로 살게 하고자 하는 사랑임을.
변기로 사용되며 오줌을 받아먹는 것이 나의 헌신이 아니라,
모시는 분께서 한때 피와 살이었던 것을 나누고 베풀어주시는 사랑임을.
걸레로 사용되며 발과 똥구멍을 청소하는 것이 나의 봉사가 아니라,
계집의 쓸모와 위치를 깨닫고 가치있는 계집으로 살 수 있는 기회와 자비를 하사하신느 사랑임을.
계집에게 행해지는 모든 폭력과 학대 그리고 조교와 훈육은 결국 계집을 위함임을.
계집은 모시는 분께 사랑을 드리는 존재라고 생각했다.
계집은 모시는 분께 가축으로써 사육되고, 변기로써 사용될 뿐 애정을 바라서는 안되고
그저 계집이 존경과 숭배의 마음으로 모시는 분께 봉사를 올리고 사용되는 순애의 관계라고 생각했다.
아주 어리석은 생각이었던 것 같다.
계집은 결국 사랑조차도 받는 존재다.
그 사랑의 종류가 학대, 폭력, 조교, 훈육 등일 뿐이다.
계집이 받을 수 있는 사랑의 형태가 자지, 좆물, 오줌, 욕설, 매질 등일 뿐이다.
계집은 결국 모시는 분께 조차도 받고 기생해야만 살아지는 존재다. 버러지처럼.
계집이 가축임을 정확히 이해하는 것에서 진정한 남존여비가 시작된다는 제 생각은, 이러한 계집의 본성과 본능을 이해하지 못하면 자칫 남존여비가 '목적'이 되는 것이 아니라 '도구'로 소모되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계집은 음란해야하니 어떤 자지든 기쁘게 받아야 한다는 갱뱅이나 초대남, 계집은 천하니 모든 남성을 따르고 숭배하라는 공용변기론 등이야말로 그러한 '남존여비의 도구화' 사례라고 생각합니다.
계집이 하늘로 받들어 모셔야 할 남성은 오직 소유주 남성 한 분 뿐이고, 음란함을 드러낼 수 있는 것도 오직 소유주 한 분 앞 뿐입니다.
다시 말해, 계집은 음란하고 더럽고 천박한 존재이기에 더더욱 성욕의 노예가 되지 않도록 계집 스스로도 마음을 다잡아야 하는 것이고, 계집은 스스로 무언가를 해낼 수 없는 불완전한 가축이기에 소유주 남성의 매질과 조교를 통해 훈육받으며 정숙한 계집으로 완성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계집이 성욕의 노예이기에 발정난 가축처럼 사는게 당연하단 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계집이 가축이기에 성욕의 노예가 되기 쉽고, 그러므로 발정난 들짐승처럼 살지 않기 위해 소유주 남성에게 조교와 훈육울 받아야 하는 것입니다.
인과관계를 정확히 할 필요가 있습니다.
계집은 음란해야 한다는 말에 동의하지 않습니다.
계집은 이미 음란하기에 정숙해져야 한다고 말하는 분을 모시길 원합니다.
계집이 가진 더럽고 천박한 욕구를 이해하며, 그것을 타인 앞에서 제어하고 인내할 수 있도록 조교와 훈육하시는 분이 진정한 소유주 남성이라고 생각합니다.
조교와 훈육을 하더라도 계집은 가축이기에 본능을 무한히 억누를 수 없어 분출해야만 하고, 그 욕망을 안전히 그리고 완전히 드러낼 수 있는 곳은 오로지 소유주 남성 한 분 앞이어야만 한다는 것을 가르치고 배우고 실천하는 것이 진짜 남존여비에 따른 삶이라고 생각합니다.
내가 계집년에게 세이프워드나 애프터케어가 필요없다 생각하는 것은 계집년이 인간이 아닌 가축년이기 때문이다.
가축은 쓰임에 맞게 사용되고, 사용 가치를 가지도록 조교받으며, 안전과 사육을 보장받은 채 주인에게 소유되는 것만으로 기쁘고 행복한 삶이다.
계집도 마찬가지이다.
얼마나 사랑받으며 행복한 삶을 살지는 계집이 얼마나 제 역할을 다하고 복종하는지에 달렸다.
그러려면 폭력과 학대를 통해 쓰임에 맞도록 조교되어야만 한다.
계집에게 내려지는 매질과 욕설이 그 자체로 사랑인 이유다.
남존여비는 계집이 가축임을 인정하는 것에서 시작한다.
나 또한 계집년으로서 예외가 아니며, 말로 배운 것은 금방 잊거나 해이해지지만, 무자비한 폭력을 통해 배운 것들은 몸에 새겨지고 본능적으로 따르게 된다.
특히 계집년으로서 봉사하는 것은 고통을 인내하며 진심으로 존경하고 복종하는 마음가짐이 필요한데, 이는 폭력과 학대를 통해서만 완전히 교육된다. 목구멍이 쑤셔지며 토기가 올라와도 이빨을 감추고 자지를 받거나, 턱과 혀가 마비되는 것 같아도 인내하며 자지를 빨고 똥까시 봉사를 하는 것은 말로 배운다고 되는게 아니다.
맞으며 인격을 내려놓고 권위에 복종해야 행복한 마음으로 할 수 있다.
인간에겐 인간에 맞는 교육법이, 가축에겐 가축에 맞는 교육법이 있다.
인간은 말로 가르치고 이해시키면 되지만, 가축은 말만으론 개선되지 않기에 매질로 가르치고 공포와 고통을 몸에 새겨야 한다.
계집년은 말로 가르치면 따르지 않고 오히려 가르침을 우습게 여기며 엇나간다. 그러나 계집년을 매질하고 학대하면 순종하며 배우고 바르게 살고자 노력한다. 말과 규칙, 법과 통념에 따라 스스로 바르게 살아가는 남성과 계집년은 다르다.
계집년은 남성과 동등한 인간이 아니라 가축으로 취급되어야 하며 계집년 교육에 조련과 훈육, 체벌이 필요한 이유다.
계집은 왜 평생 모시는 분께 맞으며 조교받아야 하고, 왜 모시는 분께 사용되며 봉사드려야 하는지.
계집의 사회적 위치와 능력이 높을 수록, 올바른 계집으로 살기 위한 교육이 더욱 필요한 이유가 무엇인지.
계집과 남성의 본질과 본성, 그에 따른 섭리와 진정한 행복은 무엇인지.
이런 것들을 아주 오랫동안 고민하고, 계속해서 고찰하며, 계집을 가르치는 것에 즐거움과 소명을 느끼는 분은 정녕 없는걸까.
올바른 계집으로 사는 기쁨과 행복을 가르치며 나를 기르실 분.
BDSM 플례이 말고, 남존여비의 진짜 삶을 함께 하실 분.
정말 없는걸까.
역시 성욕이나 식욕은 수면욕을 이길 수 없다는 걸 새삼 깨닫게 된 6주였다...
극악의 스케줄 속에서 내 성욕이 제어된다고 착각하기도 잠시,
틈이 생기니 숨죽이던 성욕이 반발작용으로 폭발한다.
역시 난 평범한 삶은 글렀다는 것 역시도 새삼 깨닫게 되었다.
계집으로서의 역할에만 사용되고, 쓰임에 만족하며 계집의 의무를 다하는 삶만 살 수 있다면 행복하겠지.
그럴 수 없는 현실적 문제 앞에서 초라함을 느낀다. 내가 잘날수록, 더 잘 나갈수록 반대로 계집으로서의 나는 더욱 초라해진다.
이걸 이해해주실 분을 만날 수 있을까.
계집을 가축이나 성노예로 여기고 기를 생각이라면, 권리 앞에서도 의무 앞에서도 계집을 가축으로 대하세요.
계집을 가축으로 여기며 생기는 권리 앞에서는 계집을 가축 취급하여 이득만 취하고, 계집을 가축으로 여기며 생기는 의무 앞에서는 계집을 인간 취급하며 책임을 회피하지 마세요.
계집은 가축으로서의 의무만 있고 인권이 없음을 강조해놓고,
교육은 내가 사는 곳으로 가축이 기어와. 하지만 밥값과 방값은 반반^^
얼마나 찌질합니까.
가축 사료값과 방값도 없으면 가축 키울 생각 말고 평범한 반반연애 하세요. 저도 연애때는 반반 했습니다.
남성은 그저 계집을 패고 사용하는 것으로 그 역할을 다 했다고 생각한다면 그건 가짜 남존여비입니다.
계집에게 봉사와 섬김의 의무가 있다면, 남성에게도 가르침과 사육의 의무가 있습니다.
남성에게 봉사받고 사용할 권리가 있다면, 계집에게도 가르침을 받고 최소한의 보호를 받을 권리가 있습니다.
계집은 천하니 의무만 있고, 남성은 존귀하니 권리만 있다고 생각하는 것은 가짜 남존여비입니다.
계집이 몸을 바쳐 봉사하고 섬기느라 노력하는 만큼, 남성도 계집을 올바로 가르치기 위해 고민하고 공부하며 사유하는 데 노력을 아껴서는 안됩니다.
계집의 의무와 봉사만을 말하며, 남성의 가르침과 역할을 말하지 않는 것은 가짜 남존여비입니다.
계집의 구멍을 쑤시며 좆물받이로 쓰고, 계집의 입에 오줌싸고 똥까시 받으며 계집을 변기와 비데로 쓰고, 계집을 마음껏 패면서 샌드백으로 쓰는 그 행동 자체가 남존여비가 아닙니다. 계집을 그렇게 사용하고 굴린다고 해서 계집이 저절로 남존여비를 배우는 것도 아닙니다.
그 행동의 목적이 무엇인지, 어떤 의도로 계집을 그렇게 사용하고 그 행동을 위해 무엇을 가르치고자 하는지 고민 없는 사람은,
제발 남존여비를 참칭하며 공짜 창녀를 구하지 마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