덕질이 휴식이 되어야하는데 의무가 되어버려서 꼬인 것도 있는 듯... 억지로 할 필요 1도 없는데
Posts by 수려
최애분은 정말 좋은데, 최애분의 활동은 밋밋해서 팔로업할 마음이 별로 생기지 않고, 그렇다고 팔로업을 안 하자니 다른 사람들한테 뒤처지는 듯해서 이거 또 싫고. 하지만 최애분 활동이라 해서 무조건 비행기 타고 가서 바다 건너 최애분 보러 가는 건 올해로 끝이지 싶다.
최애분 활동 중 도파민을 자극하는 요소들이 많았으면 아직도 최애분 콩깍지가 씌여있었을 텐데, 최애분은 정말 좋지만 최애분 방송은 내가 좋아하는 결이 아니게 되었고, 다른 활동들은 도파민을 자극할 만한 요소가 적다...
최애분 방송이 초기 컨셉하고는 멀어지는 것 같다. 이게 조금.. 아니 많이 좀 그렇네..
음 나름 열심히 준비했는데 안 되니까 속상하고 아무리 봐도 퀼리티 별로인 다른 사람이 준비한 게 뽑혀서 더 속상함
사람도 너무 싫다
일이 너무 싫다
내일 할 일들 준비도 못 했지만 우선 오늘 기운이 쭉 빠졌고 새벽에 출근할 수도 있으니 그냥 쉴래...
12.2 올해 가장 행복했던 일
: 최애분을 50cm 안에서 실물 보고 10초 가량 대화한 것.
한국에서 왔다고 한 마디 했을 뿐인데 놀라시다가 찐 감동 받으시고는 돈 많이 들었겠다며 걱정해주셨는데 ㅋㅋㅋ 다정다감한 우리 최애분 만날 수 있으면 돈 얼마나 들어도 만나러 가죠 ☺️☺️
올해 고통의 연속이었지만 최애분 덕분에 봄, 가을은 찰나의 시간이었지만 행복으로 꽉찬 시간의 단편이 하나씩 생겼다. 🩷
12.1 올해 가장 기억에 남는 일
: 아빠 식장에서 있었던 일들.
엄마와 나 위로해준다고 생각지도 못한 분들이 많이 와주셔서 감사했기도 했고, 아빠가 만나고 싶었던 사람들은 거의 안 와서 억장이 무너지기도 했고.
아빠와 함께 한 시간들도 선명히 기억나지만 자주 떠오르는 건 식장에서 만났던 사람들의 얼굴과 대화다.
23년 매듭 타래 📝
아빠한테 까까 사달라고 자주 말했었는데, 아프고 나서 새까맣게 잊고 있었다.
아빠 까까 사죠 한 문장에 떠오르는 기억들.
정말인지, 아빠가 안 계신다는 사실만 빼면 다 좋았을 텐데. 이걸 아빠가 가고 나서 알았다.
지금 아빠는 하늘에서 혼자 살고 있지만, 아빠가 이 세상의 끝에 서있을 때 엄마와 나도 함께 있었다. 내가 이런 걸로 위안을 삼으면 안 되겠지만 부디 아빠가 이 세상에서 날아오를 때, 괴롭고 고통스러웠지만 그럼에도 마지막까지 함께 있었던 엄마와 나의 마음을 느끼고 덜 두려워했었으면 싶다.
아빠가 아프고 나서, 우리 세 가족 너무너무 힘들었지만... 아빠가 암 진단 받고 하늘로 가기까지의 3개월 남짓 엄마는 아빠와 늘 함께였고 유일하게 경제활동을 하던 나는 아빠의 여명 3주를 남기고 나서 아빠 간병으로 휴직을 할 수 있었다. 아빠와의 이별은 너무너무 가슴 아픈 일이었지만, 누군가에게는 이 모든 게 부러운 일이 아니었을까.
아빠가 혼자서 어딜 가는 걸 안 좋아해서 언제나 엄마를 데리고 다니려 했다. 소일거리로 한 밭일도, 아빠 시골 친구들 농사일이나 이모 농사일도, 단풍 구경 꽃 구경하고 싶을 때도.
엄마는 궁시렁 거리면서도 컨디션이 괜찮으면 아빠를 따라서 잘 다녔다. 부모님은 나보다 외박을 더 많이 하셨다.
아빠가 안 계신다는 사실만 빼면, 우리 집은 그래도 남들이 부러워할 만한 집이었다. 가진 것은 없어도 부모님 사이 좋고 나도 그럭저럭 밥벌이는 할 수 있고.
아빠가 나이 먹어서부터 부쩍 말수는 준 대신 화를 내지 않고 조목조목 말하는 지라, 부모님 친구 중 신경질적인 남편을 둔 이모들이 엄마를 부러워했었다.
가족사진 공짜라는 허위 광고에 속아 액자 4개 맞추는데 백만원 쓴 가족사진을 들여다보면, 그래도 이거라도 찍어서 다행이다 싶다.
이 날 처음 입은 연미복 차림으로 사람 좋게 웃고 있는 아빠 사진은 영정 사진이 되어 거실 한가운데에 걸려있다.
대체 아빠의 상실을 온전히 받아들이는 날은 언제일까.
아직도 아빠가 안 계신다는 사실이 사실이 아닌 것 같다.
나를 지켜줄 아빠가 이제는 없네.
조금이나마 아빠 흔적을 남기고 싶어 엄마 몰래 내가 사준 반팔과 회사 유니폼은 따로 빼놨다.
아빠 양복과 구두를 담은 선물 박스를 태우고 있다.
내가 평생 갖고 있으려 했는데 아빠가 필요했나보다. 동생 대동하고 엄마한테 간 거 보면. 내가 안 줄 거라고 생각해서 엄마한테 간 거면 아빠는 잘 생각한 거다.
한 사람의 끝이 참 허망하다.
내가 남길 수 있는 건, 옷을 태우기 전 아빠 양복 상의와 구두를 찍어두는 것밖에 없었다.
솔직히 아빠 이야기만 하루종일 하고 싶을 때가 있다. 여과없이 아빠 이야기만 줄줄 쓰고 싶을 때가 있다.
내 기억에서 평생 살아갈 아빠를 누군가의 기억에 심어주면서 내가 느껴온 감정들을 더 온전히 느끼고 싶어서인 듯하다.
아빠가 암 판정 받은 날, 아빠 병원에 갔을 때가 생생한데...
아직도 아빠가 암때문에 돌아가셨다는 게 믿기지 않는다.
옷이 필요하면 나한테 오지 왜 엄마한테 간 걸까.
아빠는 엄마 울고 있을 때 눈물 닦으러 와달라 내가 울면서 기도했잖아.
아침부터 엄마는 눈물바람이고, 나는 속이 말이 아니고.
아빠, 올 거면 나한테 와줘. 엄마 많이 울었잖아... 나한테 와줘 제발.
참, 괴로운 통화였다.
오늘 새벽 엄마 꿈에 아빠가 작은 아빠랑 양복 맞추러 양복점에 들어가는 장면이 나왔다 했다.
내가 아빠 양복은 평생 갖고 있으려 했는데... 아빠가 하늘에서 양복이 필요한가보다.
서울로 전원할 때 입고 갔다던 양복.
그래 아빠, 양복 보내줄게 거기서 꿀리지 말고 체면 구기지 말고 다녀.
암 4기 판정 받은 분과 통화했는데, 목소리만 들어도 이미 병색이 짙어진 게 느껴졌다. 아빠가 임종기 접어들기 전 목소리가 떠올라 한순간에 마음이 가라앉았다. 아빠가 싫은 게 아니고, 그 대상자가 싫은 것도 아니다. 암때문에 아빠도 엄마도 나도 고생했던 지옥같은 시간들 속에서 겪은 고생이 되살아나 힘들다.
오늘은 아빠 49제 날이다.
아빠 보러 가기 전 은행에서 아빠 계좌, 카드 해지를 하고 있는데...
엄마도 아빠가 가진 모든 계좌를 다 아는 게 아닌지라 몇 곳에 방문을 해야할지 조금 까마득하다🤦♀️
그래도 복잡한 거 없이 내가 다 처리할 수 있으니...
엄마가 점심을 자꾸 거른다. 아파서 못 먹겠다고 하시는데, 집에 아무도 없어서 기운이 없어 끼니를 거르는 거 같다. 해서 점심은 집에서 먹기로 했다.